볶은 흙 한줌

볶은 흙 한줌


[볶은 흙 한줌]

궁궐 안에 꽃을 가꾸는 정원사가 새로 왔습니 다. 그가 꽃을 가꾸는 솜씨는 대단했습니다.
한눈에 병든 화초도 가려냈고, 시들던 꽃도 그의 흙투성이 손이 지나기만하면 생기를 얻습니다.

하루는 임금이 정원에 나왔는데 마침 새득새득한 꽃들을 돌보느라 땀을 흘리는 정원사를 보았습니다. “살아나겠느냐?
임금이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새벽에 맑은 이슬이 내렸고, 지금은 따슨 햇볕이 애쓰고 있으니 소생할 것입니다.”
정원사가 공손히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말이 임금의 귀에 거슬렸습니다. 이런 투의 대답은 처음 들었기 때문에.. 모든게 임금님 덕분이라고 했는데.. 임금은 얹짢았지만 꾹 참고 지나쳤습니다.

그 뒤 임금은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정원을 거닐다가 또 정원사와 마주쳤습니다.
“예쁜 나비들이군.”
“예, 향기를 풍기는 꽃이 늘어났으니까요…”
“못 듣던 새 소리도 부쩍 늘었어..”
“그만큼 숲이 우거졌지요..”
그러자 임금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얼굴도 붉그락푸르락 했습니다..

“내 덕분이 아니란 말이렸다!”
“예?”
정원사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길로 임금을 바라보았습니다. 뒤따르던 신하들도 덩달아 눈꼬리를 치켜 올리더니, 정원사를 향해 삿대질을 했습니다..

“성은도 모르는 저 늙은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잔뜩 화가 난 임금님이 명령했습니다
“꽤씸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당장 옥에 가두어라..”
“네 덕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어디 한 번 보자. 감옥에서 꽃 한송이만 피워내면 풀어
주겠다..”

“그러시오면, 흙 한줌만 주십시오.”
정원사가 침착하게 말했다..
“오냐, 볶은 흙을 주마, 하하하.”
정원사는 감옥으로 끌려 갔고, 그 꼴을 보며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볶은 흙을 주는 겁니까?”
“혹시 꽃씨가 숨어 있는 흙을 주면 안되니까.”
“과연 훌륭하십니다..”

감옥에는 높다란 곳에 조그만 창이 나 있습니다. 감옥은 콧구멍만 했습니다. 그 창을 통해 하루에 한 차례씩 손바닥만한
햇살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정원사는 볶은 흙이 담긴 종지를 창틀에 올려놓고 그 햇살을 고이 받습니다. 가끔 물 한모금도
남겨 그 흙에 뿌려 주었습니다.
한달, 두달, 일년, 이년,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삼 년을 훌쩍 넘긴 이른 봄 날이었습니다. 종지에 햇살을 받던 정원사는 흙 가운데 찍힌 연두색 작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갓 움튼 새싹에 그 순간, 정원사의 눈에 맺힌 이슬 방울 하나가 그 위에 떨어졌습니 다..

아마 바람이 몰래 조그만 씨앗 하나를 날라다 주었나봐요. “아무렴, 사람이 아무리 뒤축 들고 두 팔을 쳐들며 막으려해도 그 높이 지나는 바람을 어쩔 수 없지. 두 손바닥으로 깍지껴 편
넓이 이상의 빛을 가릴 수도 없고.”

정원사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피었습니다. 정원사는 정성껏 새싹을 가꾸었습니다. 그 무렵 임금님이 감옥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감옥을 바라보던 임금님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니, 저건 무슨 꽃이야!”
감옥의 창틀 위에 샛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람에 흔들릴때
마다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것 겉았습니다.

임금님의 머리 속에 어린 왕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갈라진 돌 틈에 뿌리 내린 민들레 꽃을 보고 가슴 떨렸던 기억을. 그때 왕자의 스승이었던 학자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게 바로 생명입니다. 천하보다 귀하지요”
“생명은 누가 키우나요?”
” 햇볕과 비와 바람….., 자연이지요….”

임금님의 귀에 스승의 말이 생생했습니다 몇 해전 감옥에 보낸 정원사가 떠올랐습니
다. 임금님은 눈을 감았습니다
꽃 한 송이조차 오직 자기 덕에 피는 줄 알고 살았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어서 감옥의 문을 열어라. 어서!”
난데 없는 임금의 명령에 신하들은 갈팡질팡 했습니다.!!

-동화작가/김병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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