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첼로

말하는 첼로


[말하는 첼로]

케네디 센터의 한 단원이 숨을 거두는 날이었다.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장의사로 조문을 왔다. 얼마 후 검은 빛깔의 자동차
한 대가 장의사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검은 정장을 한 점잖은 노인이 내리고 첼로를 든 남자가 그 뒤를 따랐다. 노인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던 사람들이 노인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자 노인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선 노인을 몇몇의 동료들과 유가족이 침통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맞이했다. 방 한가운데는 문상객을 위해 열어놓은 관이 놓여져 있었다

노인은 관 앞으로 걸어가 평화롭게 잠든 부하 단원의 얼굴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무릎을 꾾고는 고인의 손에 자기 손을 포개었다.

이윽고 천천히 일어선 노인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보게, 의자 하나만 가져다 주게나.” 누군가 의자를 가져오자 노인은 자신을 뒤따라오던 남자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남자는 악기케이스를 열고 첼로를 꺼내 노인에게 가져다 주었다.

노인이 천천히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2번 의 조곡 (사라반드)가 엄숙하게 장내에 울려 퍼졌다. 고인의 시신 앞에서 첼로를 켜는 노인의 얼굴에는 고요한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애절한 연주가 흐르는 동안 동료들과 유가족들은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울음을 참는 그들의 눈엔 눈물이 그렁하게 맺혀있었다.

장중한 첼로의 선율이 복도 밖까지 흘러나왔다. 조문을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은 그 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슬픔으로
내려앉았다. 그 중 누군가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흐느끼며 속삭였다.

“첼로가 말을 하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일개 단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아름답게 챌로를 연주하던, 검은 뿔테안경을 쓴 노인이 바로 파블로 카잘스를 잇고 있는 현대음악계의 거장 “로스트 로포비치 이다.!

-‘좋은생각 1996년3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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