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군의 묘역

어떤 장군의 묘역


[어떤 장군의 묘역]

월남전이 한참 벌어질때 탁월한 전술과 전투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군이던 시절 5.16혁명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다시 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유신을 반대했고 월남전에 참여해 줄것을 권유 받았지만 월남전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고사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여려차례 권유에도 거부 의사를 밝히자 미군은 2개 사단을 한국서 철수한다고 통보해와 하는 수 없이 월남전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혁혁한 전투의 전술은 다른나라에서 군사적 교본이 되기도한 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과에 반해 병사들은 한국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힘들어 했는데 특히 김치를 너무도 먹고 싶어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한국군은 김치를 먹어야 사기가 진작되 잘 싸울 수 있다고 김치 공장을 세워 줄 것을 미군에 요구해 한국서 김치 통조림 공장이 들어서고 제대로 된 수출용 김치 통조림이 베트남으로 공수되어 왔습니다.

고국에서 김치가 도착한 날 병사들은 모두다 상기된 얼굴로 “김치 만세!”를 외치며 사령관에서부터 장병들까지 모두 모여 들뜬 마음으로 김치 포장지를 뜯고 통조림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오면서 기후탓에 깡통이 부풀어 오르고 김치는 짧은 시간동안 푹 익어 시기까지 했습니다.

더우기 김치는 깡통의 녹물이 배어나와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병사들은 “사령관님, 핏물이 흐르는 김치를 가져와서 먹으라고 하면 어떡합니까?”라며 여기저기서 원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령관 자신도 보기에 기가 막혀 고국에서 온 그 김치 통조림을 보면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라. 지금 우리나라는 김치 깡통 하나 제대로 만드는 기술이 없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사령관은 이내 그 무거운 침묵을 깨고 또다시 말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기술로는 이렇게 밖에 못 만든다. 너희들이 이거 못먹겠다고 하면 한 2-3주 후에는 정말 맛있는 캔 김치를 먹을 수가 있는데 그건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김치 통조림 값은 농촌에 계신 너희 부모님께 가는 게 아니라 일본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가는 거다.”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들 고국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고국에서 배추 심고 무 심은 우리 부모님한테 우리의 고귀한 목숨 받친 돈이 가야지. 아니 어떻게 그 돈이 일본 놈들한테 갑니까?”

그날 사령관은 비롯한 월남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은 그렇게 눈물 범벅이 되어 그 녹물 가득한 핏물 김치를 벌컥벌컥 들이 마셨습니다. 그 덕에 그 통조림 값은 고스란히 고국으로 보내져서 부모님은 논을 사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쓰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월남전에서 전우들의 죽음에 너무도 가슴이 아파 눈물을 많이 흘렸고 그리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나를 장군의 묘역을 묻지말고 여기서 조국을 위해 죽어간 병사의 묘역에 같이 묻어달라” 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채명신 장군입니다.

그는 지금 국립묘지 병사의 묘역에 같이 묻혀있습니다. 참된 영웅은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전과를 올리는데 있지 않고 그의 전과에 걸맞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삶의 내용도 숭고한데 있습니다.

-박성목 / ‘가슴으로 읽는 따뜻한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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