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쓰는 글 / 박철영

몸으로 쓰는 글 / 박철영


몸으로 쓰는 글 / 박철영

​몸으로 쓰는 글은 흙에다 써야 한다
흙에 쓰는 글은 진실이란 말이 필요 없다
내 아버지 어머니도 흙에다 글을 썼다
흙에다 글을 쓸 때는 필기구가 필요 없다
흘린 땀이 필기구다
가슴 아픈 글을 쓸 필요도 없다
가슴 아프게 하면 흙이 슬플 것 같아
말은 흙에다 하지 않고 하늘을 보며 했다
나는 지금도 흙에다 글을 쓴다
흙에다 쓴 글은 지워지지도 않는다
지우개가 필요 없는 글을 읽어 본다
내가 쓴 글이 잘못 쓴 것은 아닌가
살피고 또 살피며 나를 들여다본다
잘못 쓴 글을 볼 땐
흙에다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일은 앞으로 적지 않겠다고
흙은 지나온 과거를 탓하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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