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는 향기
평소 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처럼 편안하게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아왔지만 얼굴에는 온화한 웃음이 넘쳐났습니다. 며느리에게도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마치 딸처럼 잘 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인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늘 무엇인가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며느리도 그러려니 했지만 저녁 무렵에 들어오는 시어머니의 표정을 보면 무척 피곤해 하면서도 늘 입가엔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날은 혼자서 훌쩍거리면 조용히 우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며느리는 필시 시어머니가 로멘스 그레이 즉 연애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가 용돈도 부족해 하시곤 해서 잠깐씩 부업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귀는 할아버지가 있을거라고 여긴 며느리는 어느날 이 문제를 진지하게 아들인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한참이나 천정을 쳐다보더니 아무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아파트에 초인종이 울리는 일이란 경비 아저씨나 택배, 등기 우편물을 전하는 우체부 아저씨가 전부였는데 작은 인터폰 화면에 비친 얼굴은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순간 ‘아니 아파트에 왜 잡상인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도대체 경비아저씨는 뭐하고 계시지’ 하며 신경질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문을 열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할머니가 아주 미안해 하며 감사하다며 꼭 어머니에게 전해 달라며 까만 봉지를 건네고는 갔습니다.
까만 봉지 안에는 밀감 몇개와 사탕 몇개 그리고 작은 우유가 한 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도대체 이게 뭐지?” 하며 내팽개치듯 까만 봉지를 식탁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습니다.
저녁에 시어머니가 들어오시자 며느리는 할머니가 다녀간 일을 이야기하고 까만 봉지를 내 밀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어머머 아이고 이를 어째 아이고 이를 어째 그 할머니가 … 그 할머니에게 이것도 소중한건데’ 하시며 말을 잇질 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이 까만 봉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곧 겨울이 올것 같아서 시장 지물포에서 비닐을 사다 산동네 쪽방촌 독거노인 할머니집 창문을 비닐로 한기를 막는 작업을 하고 연탄도 몇백장 쌓아주고 왔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보답으로 이걸 보냈다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갑짜기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간 시어머니를 너무나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바쁘게 산 것은 이러한 소외된 분들을 위해 조용히 봉사를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것입니다. 아까 그 할머니가 초인종을 눌렀을때 벼라별 좋지 않은 생각을 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며느리는 순간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자신도 시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사람이 될거라고…
사람도 꽃처럼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리향이란 별로 이쁘지도 않는 철쭉처럼 생긴 보통의 나무에서 피는 꽃입니다. 하지만 이 꽃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합니다.
꽃은 자신의 향기를 사방으로 퍼뜨려 멀리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그 향기를 가슴에 품도록 해서 후대에 전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시어머니의 향기를 며느리가 품고 또 꽃을 피워내고 그것을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면 자손 대대로 멀리 멀리 계속해서 향기가 전해 질겁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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