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부ㅣ大丈夫

대장부ㅣ大丈夫


[대장부ㅣ大丈夫]

○ 남자 중의 남자, 사내답고 씩씩한 남자
○ 大(클 대) 丈(어른 장) 夫(지아비 부)

남자 중의 남자, 사내답고 씩씩한 남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다 자란 씩씩한 남자가 丈夫(장부)인데 여기 큰 大(대)를 붙여 남자 중의 남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대장부가 되기에는 ‘孟子(맹자)’에 의한다면 무척 어렵다.

景春(경춘)이란 종횡가가 맹자를 찾아와 公孫衍(공손연), 張儀(장의) 등을 대장부라고 하자 그들은 명령에 순종했을 뿐이라며 반박한다. ‘천하의 넓은 곳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서 천하의 큰 도를 시행한다. 뜻을 이루면 백성과 더불어 그 뜻을 이루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홀로 그 길을 간다. 부귀도 그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 못하고 빈천해져도 의지에 변함이 없고 위세와 무력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다’고 열거하며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대장부라고 합니다(此之謂大丈夫/ 차지위대장부)’라고 했다. 큰 뜻을 품고 대도를 걸으며 교만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켰다. 滕文公(등문공) 下(하)에 나온다.

‘後漢書(후한서)’에 실린 趙典(조전)이란 사람은 거침없이 간언을 해서 이름난 선비였다. 그의 조카 趙溫(조온)도 못지않아 京兆(경조)의 속관으로 있을 때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자리를 박차면서 말했다. ‘대장부란 마땅히 웅비해야 한다. 어찌 편안히 엎드려 있을 수 있겠는가(大丈夫當雄飛 安能雌伏/ 대장부당웅비 안능자복).’

이보다 조선 世祖(세조) 때 역모에 몰려 참살된 南怡(남이, 1441~1468, 怡는 기쁠 이) 장군의 北征(북정)시가 더 유명하다. ‘백두산의 물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하면(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불러주리(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권신 柳子光(유자광)이 未平國(미평국)을 未得國(미득국)으로 한 글자를 바꿔 모함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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