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기도
대기업에 간부로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도 따기 어렵다는 자격증을 두 개나 가지고 계신 분인데
그 자격증이 취직을, 승진을 시켜준 거라고 말씀합니다.
하루는 그분과 술을 마시면서 시험에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좌절감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지치는 날엔 기도가 희망이 되기도 하니까.
다음 시험엔 꼭 붙게 해달라고 비셨나고 물었는데 아니랍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합니다.
공부는 스스로 열심히 할 테니 떨어지면 다만 주저앉지 않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공부는 악착같이 혼자 할 수 있지만 밀려오는 좌절감은 도무지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시험에 떨어져도
다시 도전할 힘을 잃지 않도록 버틸 수 있게,
견딜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나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기도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 투성이었고
염치도 없이 늘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 요구만 하면서
속물처럼 기도에 기대어 산 날들이 많았으니까요.
“노력은 제가 할 테니 지쳐 쓰러지는 날, 다만 주저앉지 않게 해주세요.”
이 담백한 기도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날은 술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서영식, ‘툭하면. 인생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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