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일생ㅣ萬死一生

만사일생ㅣ萬死一生


[만사일생ㅣ萬死一生]

○ 만 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
○ 萬(일만 만) 死(죽을 사) 一(한 일) 生(살 생)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겨우 죽음을 모면한다.

태평한 정치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당 태종의 정치[貞觀之治]를 기록해 놓은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보이는 말이다. 수(隋)나라는 건국 초부터 대토목 공사를 일으켜 나라가 피폐했는데, 양제(煬帝) 때에 이르러서는 도가 심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문제(文帝)의 먼 인척으로 총애를 받던 이연(李淵)은 관중의 치안을 맡고 있다가 내란 진압의 특명을 받고 아들 이세민(李世民)과 함께 출정하였다. 이연은 본래 호탕하여 천하의 호걸들과 친분을 맺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양제의 의심을 사서 황제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이세민은 차제에 독립할 것을 아버지에게 권하였다. 7세기 초 내란이 격화되어 양제가 있는 강도(江都)가 고립되자, 이연은 태원(太原)을 거점으로 독립하고, 돌궐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점거한 후 이듬해 양제가 살해되자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세민의 활약이 뛰어나, 아버지로부터 ‘천하는 모두 네가 이룩하여 놓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세민이 아버지를 도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를 같이한 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량(張亮)이나 이정(李靖), 이적(李勣)과 같은 명장, 왕규(王珪)·위징(魏徵)·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 같이 현명한 재상들이 이세민을 도와, 후일 정관의 치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세민은 현무문에서 형제 세력을 물리치고 태종으로 즉위하였으나 그 후 관료제로써 지방에 할거하던 군웅을 복속시키고, 학문을 장려하여 민심을 가라앉혔다. 그는 또 능연각(凌煙閣)을 설치하여, 개국 때부터의 공신 20명의 초상화를 그려 걸어 놓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옛날에 방현령은 나를 따라 나라를 평정하느라고 고생했는데,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했다(萬死一生).” 흔히 사용하는 구사일생(九死一生)과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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