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그림자 멀리멀리
얼음짱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 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 속에 든 빙산이 제 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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