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껴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한쪽으로 비켜서 있는 이들

봄의 앞 다툼 속

먼발치에 피어 있는 무명초

하루나 이틀 나타났다 사라지는 덩굴별꽃

중심에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많은 눈물

흘리면서도

비껴선 것들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산 자들의 행렬에 뒤로 물러선 혼들

까만 씨앗 몇 개 손에 쥔 채 저만치 떨어져 핀

산나리처럼

마음 한 켠에 비켜서 있는 이들

곁눈질로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은

비껴선 무늬들의 아름다움이었는데

일등성별들 저 멀리 눈물겹게 반짝이고 있는

삼등성 별들이 있는데

절벽 끝 홀로 핀 섬 쑥부쟁이처럼

조금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저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비껴선 존재들이 필요했다는 것을

언젠가 그들과 자리바꿈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한쪽으로 비껴서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비켜선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내 생을 비켜 갔다

 

나에게 부족한 것은

비켜선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깐 빛났다

모습을 감추는 것들에 대한 예의였다

 

– 류시화 – 

사랑이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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