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난
이렇게 살았을 게다
새참 내 오는 찔레 밭둑에서
아내랑 같이 고수레를 하고
사래 긴 밭 지심 멜
걱정이나 하며
그렇게 한 세상
살았을 게다
스무사흘 새벽달이
잠긴 옹달샘
표주박으로 고이고이
떠올릴 적에
아내보다 내가 먼저
사립을 열고
샘길 이슬을
털어 냈을 게다
먹다 남을 감 꽃
목에 걸고
풀물이 베어 돌아오는
막내딸 눈동자
나도 딸처럼
푸른 눈으로
장에 간 아내를
기다렸을 게다
상처나면 자리 밑
흙 긁어 바르고
오줌싸면 키 씌워
소금 꾸러 보내고
한차례 모이 주면
그만인 병아리처럼
새끼들도 그렇게
키웠을 게다
아, 세월이 내 등을 밀지 않았더라면
난
그렇게, 그렇게 살았을 게다
-박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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