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에 꽃피운 진정한 사랑
영국군 보병 제8사단에 배치된 신임 젊은 장교 브라운은 토브룩 요새에 도착하자마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신참 장교인 브라운은 하루 종일 하늘과 땅을 울리는 전투기와 대포 소리,그리고 여기저기 쓰러지는 전우들을 지켜보면서 매우 견디기 어려운 긴장과 공포감을 느꼈다. 브라운은 결국 전쟁 공포증에 걸리고 말았다.
1942년 5월 26일 독일의 롬멜장군의 정예부대의 진격앞에 영국군8사단의 방어선이 맥없이 무너졌다. 토브룩 요새의 병사들은 포로로 잡혔고 브라운 역시 느릿느릿 행진하는 포로의 행렬에 끼어 있었다. 독일군의 잔혹성을 익히 들어왔던 그는 장차 닥칠 위험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독일군이 행렬 안에서 벌어진 사소한 소란을 진압하기 위해 기관총을 난사했는데 그때 브라운은 일부로 총에 맞은 척하고 땅에 엎드려 있다가 탈출을 기도했다.
다행히 적군은 브라운을 발견하지 못했고 필사적으로 도망친 브라운은 가까스로 아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브라운의 전쟁공포증은 더욱 심각해졌다. 하루 종일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는가 하면, 기관총 소리만 들어도 바들바들 떨면서 매일같이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심지어 탈영도 생각했다. 브라운은 탈영까지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 싫고 부끄러웠지만, 그보다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간절 했다.
그러던 어느날 브라운은 자신의 전쟁 공포증을 단숨에 치료해줄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어느날 점심시간 후 사단 참모가 휴식중인 병사들에게 책들을 던져 주었다. 그중에 책의 제목은 ‘포성 속에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법’
특히 감명받은 줄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해서 죽음의 신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단언하건대 그것은 부질없는 소망에 불가하다.’ -작가 주디스-
전쟁 속에서 그녀의 글은 한줄기 빛처럼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브라운은 용기를 내어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답장이 2주 후에 왔고, 두 사람은 전쟁 기간 중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랑의 감정이 싹튼 브라운이 주디스에게 사진을 보내 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사진 대신 질책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토록 제 얼굴이 보고 싶으신가요? 당신이 말해왔듯이 당신이 정말로 저를 사랑한다면 제 얼굴이 아름답던 그렇지 못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만약 당신이 보시기에 제 얼굴이 추하기 짝이 없다면 그래도 당신은 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브라운은 자신의 요청에 이런 반응을 보인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드디어 전쟁은 끝이 났다! 귀국하게 된 브라운은 주디스에게 만날 것을 청했다. 주디스는 브라운에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런던 전철역 1번 출구에서 제 책을 들고 서 계세요. 저는 가슴에 빨간 장미꽃을 꼽고 나갈 거예요.
하지만 제가 먼저 당신을 아는 척하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이 저를 보고, 만일 제가 당신 연인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 되면, 모른 척하셔도 됩니다.”
브라운은 두근거리는 마음에 조금 일찍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금발의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계’ 의 미인이 나타났다. 브라운은 녹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그녀에게 넋을 잃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지나갔다.
순간 브라운은 그녀의 가슴에 장미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브라운은 자신의 성급함을 자책하고는 그녀도 녹색 옷을 입은 여인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6시. 저 멀리 가슴에 장미꽃을 단 여인이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를 본 브라운은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얘지는 듯했다.
놀랍게도 걸어오는 여인은 못생기다 못해 아주 흉측한 모습이었다. 한쪽 다리를 잃은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얼굴 반쪽은 심한 화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짧은 순간 브라운은 심한 갈등을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모른척해도 된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군. 정말 그녀를 모른 척 해야 하나’
그러나 브라운은 생각을 바꿨다.
“아니야, 원망해야 할 상대는 독일군이야. 이여인 역시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고. 3년 동안 나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랑했어.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이제 와서 그녀를 모른척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함께했던 시간을 배신하는 거야.”
브라운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
그녀가 돌아보자 브라운은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가 지은 책을 들어올렸다. “제가 브라운입니다. 당신은 주디스이지요?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브라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주디스가 아니라 페니예요.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전에 녹색 옷을 입은 여자분에게서 부탁을 받았어요. 장미꽃을 달고 이 앞을 지나가 달라는…그리고 저에게 말을 거는 분에게 식당으로 오시라고 하더군요.”
식당에 들어서자 녹색 옷을 입은 주디스가 환한 웃음으로 브라운을 반겨주었다. 주디스는 놀라 당황하는 브라운에게 붉어진 얼굴로 부탁하였다. “오늘 일은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당신을 시험했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해주세요.”
브라운과 주디스의 가교역활을 했던 페니가 실명을 쓰지 않고 ‘감동적인 사랑 실화’ 라는 제목으로 영국 타임스지에 게재했고 이 이야기는 영국 전역에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비슷한 소설이 등장하고 심지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1996년 5월 3일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 몇 시간 뒤. 그의 아내 주디스도 뒤를 따랐다. 일생동안 깊은 사랑을 나눈 이 두 노인은 죽는 날까지 같이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날. 이 두 노인의 평생 친구였던 “페니”가 지팡이에 의지한 체 불편한 몸으로 단상에 올랐다.
“오늘에서야 지난 50년간 비밀로 지켜왔던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여기에 누워있는 두 사람이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 때문에 밝히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 두 사람을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고, 질투하였는지 모릅니다.”
브라운과 주디스가 죽은 지 두 달 후 페니의 병도 급속히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였다.
1997년 웨딩드레스와 행복창간호 편집자는, ‘패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패니’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녀가 이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실화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영국 잡지 ‘웨딩드레스와 행복’에 ‘가장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로 선정되었던 이야기 입니다.
(1997년 1월호)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