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덮고 누운 이 비단이불을 만들려고

내가 덮고 누운 이 비단이불을 만들려고


내가 덮고 누운 이 비단이불을 만들려고

8천의 번데기가 죽었다

마술에 걸린 오래비들을 구하려면

쐐기풀의 옷을 완성할 것

동화 속 길을 찾듯 고치 속 꿈을 깨우며

몸이 가녀린 종업원은 계속 실을 자았다

몽롱한 눈빛은 작은 몸을 뚫고

보드라운 실가닥을 꾸역꾸역 토해냈다

실가닥을 토해내던 불어터진 몸뚱이가

둥둥 나를 떠메고 간다

누에가 되지 못한 번데기가

퉁퉁 불은 손의 어린 누이가

흰빛 날개를 편 채 날아든다

8천의 우화를 가진

눈빛들이 밤마다 꾸루룩, 날아오른다

-진명주 시집 ‘흰치는 언제 돌아올까’ 신생· 2013 중에서-

내가 누리는 평안이 먼 데서 그 누군가가 힘들여 지은 옷일 수 있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비단이불이 8천의 번데기가 우화한 세계라니.

그렇다면 내 주변은 도대체 얼마나 슬픈 우화로 가득한 걸까. 잊고 잃어버린, 보이지 않는 이름들이 내 삶의 씨줄 날줄임을 깨닫는다.

감지해 내지 못한 누군가의 꿈들을 입고 덮고 나는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고단하게 견딘 노동이 내 마술을 풀어 준 것이다.

누군가의 오랜 고독이 나의 하루하루를 꾸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쐐기풀의 옷을 완성해 준, 이름 모르는 그들의 눈빛이 선명해지는 느낌.

그래서 이 생은 온통 빚이다. 심연을 긷고 있는 파도 같은 빚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한, 어떤 옷을 짓고 있을까. 지을 수 있을까.

-김수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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