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만큼 잘 견뎌왔구나

그래도 이만큼 잘 견뎌왔구나


그래도 이만큼 잘 견뎌왔구나
 

마음에 때 낀 꾀죄죄하다
사골을 우려내 걷지 않은 육수 같다
선풍기를 틀어놔도 시원치 않다
물씬물씬 풍기는 더운 바람
쉼 없이 돌린 탓일게다
 
감기는 눈꺼풀 말아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저만치 떨어진 고가 밑
곰살 맞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딱딱 치고 있다
그들과 만나 막걸리 사발에 진한 애환을 안주 삼을까
 
젊은 시절부터 방탕이란 단어가 뭔지도 모른 채
기름 한 방울 목에 치지 못하고
의지대로든 아니든
차곡차곡 뼈마디 깎으며 혼을 송두리째 퍼부었다
제 살이 다하는 줄도 모르는 몽당연필처럼
가는 곳마다
녹슨 육신들의 아우성이다
비둘기도 바랄 것 없어 놀아주지 않는 세태
그래도 이만큼 잘 견뎌왔구나
허리 고추 세우며 걸어가야지
스르릉 스르릉 이상한 소리 들려도
바로 고지까지

– 채린의 시집 “내가가는 이 길이 혹굽어돌아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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