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들판 ‘킬링필드’
때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시작된 전쟁은 어느덧 국경을 넘어
중립국 캄보디아까지 번졌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정부군과
혁명을 원하는 크메르 루주 게릴라군의 대립이 한창이던 이때,
‘뉴욕타임스’지의 기자 시드니 쉔버그는 프놈펜에서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현지 통역가 겸 보조 기자였던 디스 프란은
시드니를 도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군은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되고,
결국 크메르 루주 게릴라군이 프놈펜을 장악하게 되면서 시드니와 프란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시드니는 프란의 가족을 미국으로
탈출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프란과는 헤어져야 했습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온 시드니는 캄보디아 전쟁 보도로
엄청난 주목을 받지만, 프란을 두고 온 데 대한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동안 프란은 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국민들이 짓밟히고 집단학살을 당하는 걸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그는 기자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숨죽인 채
기회를 기다렸으며 마침내 프란은 4년 6개월 만에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뉴욕에서 시드니와 재회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프란은 이후
뉴욕타임스 사진기자로 일하면서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크메르 루주 정권의 만행을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크메르 루주가 자행한 학살로 죽은 희생자들이
한꺼번에 묻힌 집단매장지를 일컫는 말,
‘킬링필드’1975년 4월 17일 집권한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은
캄보디아를 지배한 3년 8개월 10일 동안 학살, 기아 등으로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170만 명 ~ 250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다고 하는데
170만 명의 경우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1984년 ‘킬링필드’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영화는
당시에 참혹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정의로운 영웅들의 증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수의 약자들을 짓밟은 소수의 권력자들의 ‘왜곡된 기록’이 아닌, ‘진실에 근거’한 바른 역사…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진실은 어떤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엘버트 허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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