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태어나 핍박을 받으면서 살던 유대인 이었던 어빙 벌린 (Irving Berlin)은 어느 날 러시아에서 추방명령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미국으로 건너와 맨 밑바닥의 인생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선창가에서 빈민들과 함께 냄새나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작은 방에서 온 식구가 모여서 살 정도로 그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에게는 한 가지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곡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제를 모르고 작곡에 몰두해 있는 그를 비웃었습니다. 

왜냐면 작곡을 한답시고 곡을 만들면 그것을 악보에 옮길 수 있는 음표와 오선지에 대한 상식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대신 그려 넣어주어야 할 정도 였습니다. 어빙 벌린은 정규 교육이라고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상황이나 처지를 아랑곳 하지않고 작곡에만 몰두했는데 그에게 당시 한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거지였습니다. 그 거지는 맹인이어서 건널목을 건널때면 손을 잡고 건너야 했는데 그럴때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거지가 흥얼거리는 곡을 기억해 두었다가 집으로 돌아와 곡을 완성시켜 발표하게 됩니다. 그 곡이 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입니다. 이 노래는 1940년에 작곡하였는데 빙 크로스비가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것이 1941년  크리스마스 날 NBC 라디오의 The Kraft Music Hall에서 였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이듬해인 1942년에 데카 레코드에서 처음으로 음반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크로스비는 당시 이 노래에 별로 관심도 없어서 거의 연습도 하지 않고 18분 만에 즉흥적으로 레코딩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하던 노래가 갑자기 히트를 치게 되는데 당시는 진주만의 공습이 있었던 탓에 이 노래에 섞여 있는 감성과 고향에 대한 이미지가 2차 세계대전으로 출전한 군인들의 관심을 끌면서였습니다.

이 노래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고, 그는 갑자기 세인들에게 두각을 나타내면서 인기가 치솟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를계기로 브로드웨이 공연에 음악작품을 쓰는 작곡로서의 활동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나중 영화 삽입곡으로 등장하면서 무려 레코드가 1억만장 이상이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롤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누렸던 부와 명성이 미국의 경제사정이 악화 되면서 그는 모든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비관하며 모든것을 포기하고 자포자기 하였을법한데 그는 오히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으니 이제부터 내가 좋아하는 작곡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면서 그때부터 더욱 더 작곡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주옥같은 곡들을 작곡하였는데 그가 남긴 불후의 히트곡들이 무려 800곡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하나님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God bless America’라는 노래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어떤 국가적인 중요 행사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리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애국가 다음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그가 만든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평소 흥얼거린 곡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가 하고자 했던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에, 비록 거지 맹인의 콧노래라도 그는 자신의 혼을 불어 넣어 가장 아름다운 세계적 불후의 애창곡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스토리 메이커 박성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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