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상천

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상천


[헐거워짐에 대하여 / 박상천] ​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지 않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헐거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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