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는 부자
“여러분 그동안 제발 안전하게만 있어주십시요 제가 가서 돕겠습니다.” 라고 말한 사람은 네팔의 최고 부자인 초드리 회장이 한 말입니다. 네팔에 엄청난 지진이 강타했을때 그는 업무차 카트만두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본사 건물도 지진으로 부서지고 금이 가서 직원들이 업무보기를 꺼려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버려둔채, 당시 모든 사람들이 카트만두로 들어가려는 것에 만류를 뿌리치고, 엄청난 사람들이 네팔을 떠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카트만두에서 이재민을 돕기위해 모든 총력을 기우렸습니다.
그는 곧바로 SNS에 도와 줄 것을 호소하고 외신기자들과 인터뷰를 자청 했습니다. 당시 네팔은 상상할 수 없는 사망자와 수많은 이재민, 부상자 그리고 집 70만채와 3만개의 학교가 무너졌습니다. 그는 곧바로 자사 직원들과 연구하여 지진에도 견디며 빨리지을 집을 구상해서 곧바로 대나무와 양철과 흙을 이용한 집을 무상으로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7만체의 집을 손수 지어줄 생각을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그는 인도계 네팔인으로서 갑짝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계를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이가 18세 였습니다 그는 그러한 우려를 말뜸히 씻어버리고 가업을 멋지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젠 아시아 20대 부자의 대열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항공사의 물류회사에 일을 할때 방콕에서 수 많은 라면 상자가 보따리 물건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라면회사를 차렸습니다. 인도와 네팔은 한국 라면처럼 소고기 스프를 먹지 않는 것을 감안해 닭고기를 소제로 스프를 만들어 팔기 시작해서 제일 많은 양을 인도에 수출하는 잔 세계의 1%를 차지하는 라면 재벌이기도 합니다.
그는 집을 지어주기 위해 산간 오지로 4륜 구동차로 직접 방문해 무상으로 집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그를 만나면 흡사 신을 만난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부와 재물은 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팔은 국민의 만족지수가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나라입니다. 어째서 빈곤한 경제여건에 만족지수가 높으냐는 말에 그는 우리나라는 비록 경제적인 여건은 낮더라도 정신적으로 자족하고 서로의 깊은 공동체적 연대감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굶어서 죽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지역에 그의 라면이 빠짐없이 공급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몇번이고 왔던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한국은 재벌기업은 재벌이 되도록 정부가 적극 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네팔은 그 반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여건에도 나라가 곤궁에 쳐했을때 모든 조건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재벌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때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여러분 우리 기업은 어려움에 처한 국민를 최대한 발벗고 돕겠습니다.” 라고 하는 기업이 참으로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초드리 회장의 말처럼 한국은 정부의 도움으로 재벌이 되게 적극 지원하였다는 말이 다시한번 생각납니다.
그는 돈을 내 놓는게 제일 쉬운 방법이지만 그것을 택하지 않고 직접 집을 지어주고 음식을 공급하며 무엇보다도 불어덕친 재앙에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부자입니다. -출처:EBS 세계 견문록 아틀라스 한국에 없는 부자를 찾아서 중에서-
-‘세상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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