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내리며 / 허영숙

커피를 내리며 / 허영숙


[커피를 내리며 / 허영숙]

커피를 내리는 일처럼
사는 일도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둥글지 못해
모난 귀퉁이로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도 아직 상처를
처매주지 못 했거나

우물안의 잣대를 품어
하늘의 높이를 재려는 얄팍한 깊이로
서로에게 우를 범한 일들

새벽 산책길
이제 막 눈을 뜬 들풀을
무심히 밟아댄 아주 사소함까지도

질 좋은 여과지에
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일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것처럼

마음과 마음은 온도 차이로
성애를 만들고,
닦아내지 않으면 등을 보여야
하는 슬픈 배경.

가끔은 아주 가끔은 가슴밖 경계선을
넘어와서 눈물나게 하는 기억들

커피 여과지 위에 잊고 산 시간들이
따뜻하게 걸러지고 있다.

좋은일들만
걸러지는 하루이기를

-이선희 / 성 안의 아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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