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아버지
오늘따라 아버지가 보고 싶다. 30여 년 전 어느 해 겨울, 친정아버지가 오셨다. 셋째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 하셨 나보다. 아무 연락도 없이 들른 아버지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걸 말없이 내미신다. 명절 아니고는 맛보지 못하던 귀한 쇠고기다. 부엌문을 열고는 어둡지 않으냐고 물으신다. 재래식 부엌이 어두컴컴해서이다. 부뚜막에 까만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땔감이 수북이 쌓여 있다. 대학까지 공부시킨 딸이 시골에서 고생하는 게 가슴 아프신가보다.
자그마한 방은 올망졸망한 살림살이로 꽉 차있어 이부자리도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다. 아버지는 딸 내외가 자귀나무(합환수) 잎처럼 밤이 오면 포개어 자겠다고 여기시겠지…
셋째 딸인 나는 아버지가 오신 게 좋다. 밥을 새로 안치고 무와 대파를 썰어 소고깃국을 끓이고
땅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잘 익은 김치를 꺼내고 김도 들기름 발라 굽는다. 암탉이 헛간에서 금방 낳은 계란을 꺼내와 파 쫑쫑 썰고 소금 알맞게 간하여 중탕하여 밥상을 차린다. 점심을 드신 아버지는 비좁은 방안이 답답하신지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아보시고는 집 옆 빈터를 가리키며 “이 자리에 집을 지으면 좋겠군”하고 혼잣말을 하신다. 단칸방이어서 그러실까. 일이 바쁘다며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고 가시는 아버지가 못내 섭섭하다.
싱그러운 초여름, 하루는 짐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과수원 마당 안으로 불쑥 들어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웬 차일까 싶어 얼른 달려가 보니, 낯익은 고물트럭이다. 아버지가 집 지을 자재를 차에 가득히 싣고 오신 게 아닌가. 지난날, 아버지는 트럭 여섯 대에 운전기사들을 두며 운수업을 경영하셨는데, 어느 해 갑자기 부도가 나서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큰 사위가 장인에게 중고트럭 한 대를 장만해준 덕에,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떼다가 대리점마다 팔았다.
아버지는 얼굴이 숯 검둥이가 되어도 늘 웃으시며 재기의 꿈을 갖고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 텐데 시집간 딸까지 챙기시다니….
아버지께서 손수 설계한 집 도면을 보여주며 “김 서방, 돈 벌면 더 좋은 집 짓고 우선 방이라도 통 트이게 짓게”라고 하신다. 사위는 장인 앞에서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며 쩔쩔맨다.
이튿날, 아버지는 대구에서 집 지을 목수와 인부를 데리고 오셨다. 보름 만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집 한 채가 지어졌다. 큼직한 방 한 개와 주방, 목욕탕이 전부이지만 여느 대궐 부럽지 않다. 나는 방과 부엌을 손수 도배했다.
천장을 바를 때는 풀칠한 천장지가 머리 위에 떨어져 머리카락이 풀칠로 뒤범벅되어도 즐거웠다. 재래식 부엌에서 불편하게 지내다가 입식주방을 가지니 꿈만 같다.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아버지가 식탁과 의자를 입택 선물로 사주셨다. 뜰에 핀 장미꽃 한 송이를 유리잔에 꽂아 식탁에 놓으니 싱그럽다.
아버지가 창안한 목욕탕이 실용적이다. 드럼통을 개조한 것인데, 바깥에서 아궁이에 나무를 때면 드럼통 안의 물이 데워진다. 목욕탕 안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온수가 나오도록 장치해 놓은 것이다. 과수원에서 땀 흘려 일하고 저녁에는 아버지 덕분에 더운물로 씻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날, 아버지는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온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고물 트럭이 집 앞 냇물을 하얗게 가르며 미루나무 사이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냇가에 서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행복하게 살며 언젠가 집도 새로 짓겠다고 맘속으로 다짐했다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진다.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을! 벽 한쪽은 유리블록으로 장식했다. 창마다 밝은 햇살이 비치고 바람은 향기로웠다. 뜰에는 온갖 유실수와 꽃을 심고 행복의 씨앗도 심었다. 훗날 더 좋은 집을 지어 살라던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좋은 날, 아버지는 안 계셨다. 딸에게 인생을 가르쳐주신 아버지. 어느새 나도 그 시절 아버지 나이가 되어 얼굴에 잔주름이 지고 손마디가 거칠어졌다. 열심히 살면 좋은 날이 온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
-향기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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