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공원의 야트막한 언덕바지에 의자가 하나 서 있다.
젊은 날에는 튼튼한 신체를 가진 자존심이 강한 의자였으나, 이제는 닳아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데다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 왠지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한다.
몸이 무거운 사람이 앉으면 철제 다리의 이음매가 헐거워진 탓에 일쑤 삐걱거린다.
그래도 평생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내어주는데 이골이 난 터라, 사람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품어주는 데는 미립이 섰다. 그곳에 앉으면 등이 배기는 법이 없다.
의자는 다녀간 엉덩이를 기억한다지요. 그래서 좀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제 각도를 잡아주는 것일까요.
어느 의자보다 편한 의자는 집안의 의자겠지요.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의자, 직함이 없는 의자이니까요.
어느 누구에게 한번쯤 의자 노릇을 한 적 있는지, 그 의자가 안락함을 주었는지, 가만 나를 돌아봅니다.
-정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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