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리 걱정하는가?

왜 미리 걱정하는가?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신하 한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신하는 왕에게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올렸다.

“소인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시면 폐하께서 가장 아끼는 말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치겠나이다. 1년이 지나도 날지 못하면 그때는 엄벌을 달게 받겠나이다.”

이 탄원이 받아들여지자 동료 죄수들이 그를 비웃었다.

“설마 말이 하늘을 날 수 있겠어?”

이 말에 그 신하는 이렇게 응수했다.

“1년 안에 왕이 죽거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그 말이 죽을지도 모른다. 1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1년이 지나면 정말 말이 날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는가.”

코넬대 칼 필레머(Karl Pillemer) 교수가 65세 이상 미국인 1,500명에게 “무엇이 가장 후회되죠?”라고 물은 결과, 대부분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사업 실패’ 등과 같은 답을 예상했는데 말이지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처럼 걱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법.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그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방법을 모색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내가 하루 종일 걱정을 해봤는데…

옛날 어느 마을에 안락한 생활을 하는 농부가 있었다. 그가 안락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부지런히 일한 덕택이고 둘째, 하루하루를 걱정하지 않고 지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날씨가 어떻고, 경제가 어떠며, 심지어는 세계 정세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걱정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농부는 세상 사람들이 다 걱정을 하는 모양인데 자신만 안 하면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걱정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우선 농사에 대해 생각했다. ‘흉작이 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해보니 파멸이었다. 그렇다면 ‘대풍작이면?’ 하고 생각했으나 값이 폭락할 것이었다. 다음에는 날씨에 대해 생각을 했다. ‘비가 안 오고 가문다면?’ 당연히 추수할 것이 없어서 파멸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장마가 든다면?’ 홍수에 작물이 몽땅 떠내려가 농사를 망칠 터였다. 그 다음에는 건강을 생각했다. ‘병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역시 망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면 할수록 계속 걱정거리만 늘어났다.

다음날, 농부는 이웃사람에게 자기가 깨달은 중대한 진리를 말했다.

“내가 하루 종일 걱정을 해봤는데 무엇 하나 좋은 일이 없더구만. 그래서 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네.”

어느 연구 기관에서 조사를 했는데, 우리가 걱정하는 내용 가운데 40%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30%는 과거에 발생한 것으로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며, 12%는 상상으로 그려본 질병에 관한 것이었으며, 나머지 8%만이 걱정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걱정은 두려움을 잉태하며 두려움은 의욕을 빼앗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처럼 주어진 현재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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