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남자의 탄원서

어느 한 남자의 탄원서


 
전라남도 목포의 한 유통회사에서 상무로 근무했던 조호연(당시 38세) 씨는
1996년 직원 10여 명과 함께 나이트클럽으로 회식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즐거웠던 회식 자리는 악몽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회식의 끝나고 계산하기 위해 받아 든 터무니 없는 바가지 영수증에 항의했지만,
 
오히려 나이트를 관리하던 조직폭력배들이 몰려와서
조호연 씨와 직원을 폭행했습니다.
 
항의하기 위해 다음날도 나이트를 찾아갔지만, 조직폭력배들이 장악하고 있던
나이트의 사장 또한 조호연 씨를 폭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조직폭력배들은 크게 다친 조호연 씨의 회사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직원들까지 위협했으며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조호연 씨를 모욕하고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조호연 씨는 검찰에 고소장을 냈지만,
그 후 조직폭력배들의 보복은 더 끔찍하게 변해갔습니다.
 
조호연 씨의 동생을 납치해 상해를 가했으며 조호연 씨의
옮겨진 주거지를 찾아내며 가족에게 위협을 가하곤 했습니다.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자신의 입장에서 막강한 조직력과 힘을 가진
조직폭력배들과 정면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죽이고 살 것인지를 밤을 새우며 고민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호연 씨는 ‘이들과 끝까지 싸우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부끄러운 직장 상사나 아버지는 되지 말자’라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96년 7월 24일 그는 사비로 이 사건에 관해서
신문에 대통령께 보내는 탄원서로 광고를 싣게 됩니다.
 
신문에는 조호연 씨의 주민등록번호와 거주지까지 적혀 있었으며
탄원서 광고 끝부분에는 ‘대한민국은 엄연한 법치국가인 만큼 조직 폭력배와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울 것’이며 ‘만일 폭행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면 다른 시민들이
이러한 운동을 계속해 주길 바란다’라고 비장한 심정을 덧붙였습니다.
 
조호연 씨의 용기는 순식간에 수도권 전 지역의 신문사로 빠르게 보도가 되었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으킨 용기는 대통령을 움직였고
‘이번 사건을 신속히 수사하여 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하라.’

그리곤 조호연 씨에게 ‘빠른 쾌유를 빌며 조직폭력배를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를 취하겠다.’라는 서신까지 보냈습니다.
 
그 후 이틀이 되지 않아 조호연 씨와 관련된 조직폭력배들은 모두 체포되었고
전국의 조직폭력배 소탕령까지 내려져서 조직폭력배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법정에 선 조호연 씨는 모두의 예상과는 반대로 가해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호소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가해자의 엄벌보다 폭력에 무관심한 시민 정신을 일깨우고
정의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탄원서를 낸 것입니다.”
 

나 혼자 뭘 할 수 있겠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냥 넘어가자. 아닙니다.

대한민국에는 정의와 진실을 알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한다면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바르게, 아름답게,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결국 모두 똑같은 것이다.
– 소크라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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