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아흐흐흐흐으으..” 사무실을 나서며 기지개를 켰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지안 날씨쯤은 아랑곳 없는 주말 오후의 활기가 거리를 달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 저녁 먹고 밤엔 밀린 비디오 실컷 봐야겠다.” 머리 속의 계획을 기꺼워하며 기분 좋게 휘파람 불어봅니다.
오랜만에 해방감에 여유도 생겼고, 차 안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수씨, 이 부분부터 가을이에요. 낙엽 쌓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보세요 매일 시끄러운 음악만 들으면 산만해지잖아요.”
문득, 언제 들어도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리는 나에게 열심히 연설해 주던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한수씨, 나 오늘 친정 가서 하룻밤 쉬었다 와도 돼요?
“처남 혼자 있는 친정엔 뭐하러?”
“네 동생이 두부찌개를 얼마나 잘 끊인다구요. 날씨가 추워지니까 옛날에 동생과 함께 먹던 그 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요..”
“내~참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내는 그렇게 아침 일찍 친정에 갔고, 세상에 하나 뿐인 동생인데, 그래, 이왕이면 나도 한 번 가보자. 처남 본 지도 오래인데.”
간만에 자유를 즐기려던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동생이 학업을 다 마칠 때까지 결혼 할 수 없다던 아내를 설득하여 결혼하면서 처남까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처남은 대견하게도 “누나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 며 누나를 설득하여 나를 부추켰었는
데.”
나도 피자 큰것 한 판을 사고 용돈도 챙겨 처남 집을 향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언덕
연애할 땐 힘들지 않았던 그 길이 힘들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한참 후에 낯 익은 대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수돗가에 앉아서 호호 손을 불어가며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는 여자가 분명 아내였기 때문입니다. 쪼그리고 앉으면 뱃속이 치받혀
힘들다던 아내였는데 야무지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순간 아내가 안쓰럽기보다 심한 배반감을 느꼈습니다. 집에서는 하도 힘들어 해서 이불 내리고 올리는 것도 물론 걸레까지 빨아 가며 받들어 왔는데..
“흥, 뭐? 두부찌개가 먹고 싶다고?”
나는 피자 꾸러미가 춤추는 것도 아랑곳 없이 올라갔던 언덕을 씩씩 내려왔습니다.
“딩동 딩동딩동…”
초인종이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댑니다.
“아유, 한수 아냐. 장가가도 성질 급한 것은 못고쳤구나. 그런데 얼굴이 왜 벌거냐?
“새댁하고 싸우기라도 했니?
“싸우긴요,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지. 글쎄 말예요, 집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던 매형이 소리도 없이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었습니다.
“자, 처남,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야겠네 자네 기억하지? 누나와 나의 결혼식. 형편이 어려워 물 한 그릇으로 대신 했잖아. 난
누나에게 값싼 반지 하나도 못 사 주고 말야 그거 늘 마음에 걸려 몇년 동안 아끼고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반지를 선물했다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반지가 보이지 않았어. 물일이나 거친일을 해서 반지가 헤질까봐 잠시 빼어놓았다 싶었는데 여전
히 누나의 손은 빈 손가락이었어.
“반지 어디 갔느냐? 고 물어도 대답을 안했지. 너무 화가 나고 야속해서 못 먹는 술까지 먹었더니 누나가 울면서 그러더군.
친정에 갔더니 등록금을 못내 집에 쫒겨온 남동생의 철지난 낡은 교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 반지를 팔았노라고….”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누나가 슬며시 일어나 나가는 뒷모습에서 황홀하도록 잘 다려진 춘추복 한 벌과 등록금을 내밀며 눈물을 닦던 누나의 옛 모습이 겹쳐져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젖이 아파
왔습니다.
일요일이면 늘 낮잠을 잤고 아내가 없어 더 늘어지게 잘 수도 있었지만,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재로 쓰던 작은 방을 부지런히 치우기 시작하고, 방 정리가 끝나고 주문해 온 책상과 침대를 들여 놓으려는데 아내가 놀란 눈으로 들어섰습
니다..
“아—아니 무슨 일이에요? 누구 이사 와요?
“그래, 당신 두부찌개 매일 먹이려고 주방장 한 분 모셔 오기로 했어. 나도 덕 좀 보려고..”
“고마워요, 한수씨..”
아내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팽개치고 뛰어와 내게 안겼습니다.
“그런데 손에 반지가 그냥 있네. 인정머리 없는 누이 같으니라구..”
무슨 뜻인지 모르는 아내는 내 품에서 그저 어린아이처럼 훌쩍훌쩍 우는데, 뱃속의 아가가 톡톡톡톡 ” 정말 잘했다고 자꾸자꾸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동화작가 신난희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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