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가만히 귀기울이면 첫눈 내리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하얀 새 달력 위에 그리고 내 마음 위에 바다 내음 풍겨 오는 푸른
잉크를 찍어 희망이라고 씁니다

창문을 열고 오래 정들었던 겨울 나무를 향해 ‘한결같은 참을성과 고요함을 지닐 것’ 이라고 푸른 목소리로 다짐합니다.

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나는 게으르게 뒤 처지는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후회하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둥근 해님이 환한 얼굴로 웃으라고 웃으라고 나를 재촉합니다

너무도 눈부신 햇살에 나는 눈을 못 뜨고 해님이 지어주는 기쁨의 새 옷 한 벌 우울하고 초조해서 떨고 있는 불쌍한 나에게 입혀줍니다.

노여움을 오래 품지 않는 온유함과
용서에 더디지 않은 겸손과 감사의 인사를 미루지 않는 슬기를 청하며 촛불을 켜는 새해 아침 나의 첫 마음 또한 촛불만큼 뜨겁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어디서나 평화의 종을 치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모든 이와 골고루 평화를 이루려면 좀더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겸허히 두 손 모으는 나의 기도 또한 뜨겁습니다.

진정 사랑하면 삶이 곧 빛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을 나날이 새롭게 배웁니다 욕심 없이 사랑하면 지식이 부족해도 지혜는 늘어나 삶에 힘이 생김을 체험으로 압니다

우리가 아직도 함께 살아서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주고받는 평범하지만 뜻 깊은 새해 인사가
이렇듯 새롭고 소중한 것이군요.

서로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선물이군요 이 땅의 모든 이를 향한 우리의 사랑도 오늘은 더욱 순결한 기도의 강으로 흐르게 해요, 우리

부디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웃으며
복을 짓고 복을 받는 새해 되라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래처럼 즐겁게 이야기해요, 우리

-이해인,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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