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체통

삶의 우체통


삶의 우체통

수많은 주소를 품에 않고 있지만
우체통은 자신의 주소가 없다.
수많은 편지를 전해주지만
정작 자신의 사연 하나 없다.

우체통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답지한다.
로미오의 세레나데, 줄리엣의 미소, 어머니의 간절한 모정이 하얀 종이에 실려온다.
가끔은 청년의 분노와 한숨도 날아온다.

우체통은 그 모든 것은 빨간 몸통에 담지만
오래 간직하진 않는다.
누군가로 향한 분노와 한숨을 길바닥에 쏟아내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몸을 비우고는 새 사연으로 내면을 다시 채운다.

빨간 우체통은 비움의 달인이다.
언제 비우지 않은 적이 없고 비움을 거부한 적이 없다.
해탈이니 무소유니 하는 철학을 배우지 않았어도 이미 면벽한 도인이고 열반의 부처다.

오늘도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빨간 우체통이 도인처럼 서 있다.
잠시 삶을 면벽한다.
번잡한 세상사
우체통처럼 비우고 또 비운다.

-배연국의 행복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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