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열매를 달까 생각하느라
나무는 고개를 숙인다.
그 힘으로 저녁이면 과일이 익는다.

창문은 누가 두드리는가
과일 익는 저녁이여
향기는 둥치 안에 숨었다가
조금씩 우리의 코에 스민다.

맨발로 밟으면
풀잎은 음악 소리를 낸다.
사람이 아니면 누구에게
그립다는 말을 전할까.

불빛으로 남은 이름이
내 생의 핏줄이다.
저녁이 숨이 될 때
어둠 속에서 부르는 이름이
생의 이파리가 된다.

이름으로 남은 사람들이
내 생의 핏줄이다.
하루를 태우고 남은 빛이 별이 될 때
어둡지 않으려고
마을과 집들은 함께 모인다.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내 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나무가 팔을 뻗어 다른 나무를 껴안듯
사람은 마음을 뻗어 타인을 껴안는다.

어느 가슴이 그립다는 말을 발명했을까
공중에도 푸른 하루가 살 듯이
내 시에는 사람의 이름이 살고 있다.

붉은 옷 한 벌 해지면 떠나갈 꽃들처럼
그렇게는 내게 온 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
귀빈이여 생이라는 새 이파리여
내게 온 생이여
네가 있어 삶은 과일처럼 익는다.

-이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