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앞에서 / 이해인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꽂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네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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