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캐롤라인 군도에 얍섬이 있습니다. 1903년 미국 인류학자 윌리엄 헨리 퍼니스 3세가 주민들의 풍습을 연구하기 위해 그 섬을 찾았어요. 섬의 화폐제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화폐의 섬’이란 흥미로운 책을 썼습니다.

얍섬의 주민들은 동전 대신에 돌을 돈으로 사용했습니다. 섬에서 금속물질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돈으로 사용하기 위해 돌을 매끄럽게 다듬었어요.

페이(fei)라고 불리는 화폐입니다. 페이는 크고 단단한 돌 바퀴 모양이었어요. 돌 바퀴의 직경은 30cm에서 크게는 4m에 달했습니다. 크고 튼튼한 막대기를 집어넣어 운반할 수 있도록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었죠.

돌화폐는 얍섬에서 600km쯤 떨어진 섬에 있는 석회석을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채석해 가공한 뒤 카누와 뗏목에 실어 얍셤으로 운반했어요.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가는 만큼 이 돌은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돌화폐의 가치는 주로 크기와 무게에 비례했어요. 무거운 돌화폐는 옮기기 힘들기 때문에 주인이 바뀌어도 예전 주인 집에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았어요. 새 주인과 원래 주인이 돌의 소유주가 누구라는 것을 서로 인정해주면 되니까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거부가 있었죠. 마을에서 가장 큰 페이를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사람 중에 누구도 그 페이를 보거나 만져본 사람이 없었어요. 오래 전에 그 돌화페가 바다 밑에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이죠.

인근 섬에서 커다란 페이를 뗏목으로 싣고오다가 폭풍우를 만나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지자 그 페이를 바다에 버려야 했거든요.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은 그 돌이 가장 큰 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페이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고 직접 참여했던 만큼 페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죠. 그래서 비록 바다에 수장되었어도 예전 주인은 자기 소유물로 그대로 인정받아 최고의 부자가 되었어요.

얍섬 주민들의 행동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습니다. 문명인을 자부하는 우리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국가는 외환보유고라는 이름으로 지하 금고 속에 엄청난 금궤를 보관합니다.

몇 세대가 지나도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많이 가진 나라는 부자 대접을 받지요.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재산을 수전노처럼 긁어모으기만 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부자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한 호스피스병동에서 벌어진 삶의 마지막 풍경을 한번 볼까요.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자 가족들이 모여 들었어요.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자 늙은 아내와 딸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사정합니다.

“영감, 금고번호가 몇번이오? 아버지, 제발 가르쳐줘요.”
노인은 끝내 금고의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은 채 눈을 감았습니다.

황금만능의 시대! 돈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나 생활을 개선해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수백년 간 바다에 수장된 돌화폐와 무엇이 다른가요?

-배연국의 ‘행복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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