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의 기적 / 전영탁

느린 우체통의 기적 / 전영탁


[느린 우체통의 기적 / 전영탁]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죽은 사랑이 움직입니다

느린 우체통을 아시나요
오늘 부친 내 편지가
정확히 일년 뒤에
수신인을 찾아 가는
빨간 우체통의 마법 같은 비밀
어쩜 그림 같은 동화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경북 상주 한적한 교외에
40년을 함께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컴퓨터도 다룰 줄 모르는
고집불통 허당 시인 남편
그런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사랑스런 아내
그들은 고교 첫사랑이였습니다

아들 딸 하나씩 낳았으나
아들은 산행 중 잃었고
딸은 약사로 분가해
부부 둘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남편의 시는
거듭 출판사에서 거절 당했고
원고를 불 사르며
실의에 빠진 남편은
절필까지 생각하지만
그 때마다 아내는
격려와 사랑으로 보다듬어
용기를 줍니다

그런 생활 중 어느 날
돌연 아내는
시한부 암선고를 받고
깊은 시름에 빠지면서
자신의 시한부 보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수 없는
남편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낙엽이 떨어지며 쓸쓸한 가을 날
그렇게 아내는 운명을 달리 하고
남편은 짝 잃은 원앙이 되어
가을 들판을 헤메입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해
일년여를 보낸 남편은
농약을 집어 들어
자살을 결심을 하고
아내의 흔적을 더듬습니다
그 날 그 시간
죽은 아내의 편지가 도착됩니다
그 다음 날도
한 달 뒤에도

매일 한가지씩
죽은 부인은
산 남편에게 숙제를 냅니다
옷장 정리하기
텃밭 가꾸기
화분에 물주기
다시 시 쓰기
아내는 남편을 통해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시행합니다

아내는 죽기 전까지
하루 한 통씩 편지를 썼고
하루 한 통씩 느린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첫 편지는
아내가 처음 편지를 부친
일년 만에 도착한거고
두번째 편지는 또 그 다음날
도착하게 된겁니다

남편은 매일 매일
아내의 편지를 기다렸고
남편은 편지를 통해
아내를 다시 찾았고
아내의 영혼은
남편과 함께 했습니다

느린 우체통이 죽으려던
남편을 살려내었습니다
시인의 시를 부활 시켰습니다
“능소화 보다 붉디 붉은
그대 입술에 내 하얀 입술로
키스하리다”
아내는 가고 없는데
봄은 다시 오고
아내의 빈 터엔
진달래가 곱게 피었습니다

당신도 누구에겐가
일년 뒤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오늘 손편지를 쓰십시요
2019년 2월 25일에
그 사람에게 배달됩니다

지금이 행복하다면
지금 느끼는 행복을
미래에 선물하십시요
사랑을 듬뿍 담아
느린 우체통에 넣으십시요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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