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취미 생활

노년의 취미 생활


[노년의 취미 생활]

사람은 모름지기 취미를 갖고 있는게 좋다. 더구나 늙어서 그런 소일거리가 없다는 건 큰일이다. 아무 할 일 없이 긴긴 노년 생활을 보내기는 너무 지루하다. 늙어서 할 일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여가 투성이’로만 지내는 것의 지루함이란 마치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것과 흡사하다고 한다.

젊어서야 그야말로 ‘카를 융’이 말한대로 ‘생물학적인 일’과 ‘세상 적인일’에 매달려 어영부영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서 은퇴한 노년기에는 이러한 어영부영이 불가능하다. 이제는 무엇으로 몇 십 년을 소일하며 지낼 것인가? 늙거나 젊거나 사람이 아무 할일이 없으면, 목표 없는 생활이 되어버려 ‘삶의 보람’을 잃을 수가 있다. 그것은 목표없는 생활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다 늙어 버린 이제 와서 평생을 두고 가꾸어 왔어야했을 일거리나 취미가 없다고한탄을 해도 소용없는 일. 이제라도 늙도록 할 수있으면서 즐길 소일거리를 찾아보는 게 좋다.

취미라는 것도 가만 보면, 여성들의 패션만큼이나 유행을 탄다. 하지만, 무얼 하더라도 어느 정도 각자의 취향과 관심이 가는 것을 해야 한다. 워낙 오래들 살다보니, 늙어서 소일거리 문제가 노년의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떤 이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자서전 쓰기’를 권하고 있다. 또 어떤이는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다.

컴퓨터에 재미를 붙이라고 권(勸)하기도 한다. 컴퓨터가 황혼녘에 찾아오는 치매 예방에는 최고다. 나이 들면, 사소한 일에 실망하지만, 컴퓨터는 그저 내 명령에 따라 준다. 중년이나 노년의 나이에 이만한 말벗이 어디 있나? 현대사회에서는 배워서 알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다. 사실 요즘에 인터넷을 못하는 것은 지난 날 신문을 못 보는 것에 버금가지 않을는지!

아주 늙어서까지 계속해서 즐길거리는 없을까? ‘늙어서는 교양만이 여가의 풍요로움과 영속성과 만족할 만한 활동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교양이란 무엇일까? ‘투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교양이란 예술 그자체이며 타인과의 참된 인간적인 관계이고, 자연과의 합일감과 인생 이해’라고 말했다.

‘A.디큰’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년에 적응하고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문화에의 공헌, 우정의 심화, 타인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정도의 ‘자아초월’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누군가는 말하기를 ‘금세기는 가진 재산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아니고 문화 척도로 그 가문과 사람이 평가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인이라기보다 교양인으로서 자아 초월까지 바라봐야할 우리 노년들이 할 일이란 무엇일까?

우선 주인공의 자리를 미련 없이 내주고 볼 일이다. 더구나 ‘미숙한 주인공’ 역(役)은 단연코 사양할 것. 늙어서 취미 생활을 하다보면, 아마추어로서의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를두고 주위에서 연장자를 대우해준다는 뜻에서 과분한 칭송을 듣게도 된다. 그러나 박수 같은걸 기대하는 건 사양해야 할 첫째 수칙이다.

주인공 자리를 내준 우리 노인들로서는 박수를 받기보다는‘박수를 쳐주는 쪽’에 서는 게 정당하다. 경기를 응원하고, 미술품을 감상해주고, 공연을 칭찬해 주는 것만으로도 족(足)하다. 순수하게 박수쳐주는 그것으로도 노년의 취미로 족하지 않을까?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은 행복해지는 능력이다. 동시에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노후에 할일은 그냥 감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니 이것으로 취미를 삼으면 어떨까? 내가 부르기보다 들어주는 것. 내가 하기보다 남이 해 놓은 것을 감상해 주는 성숙함 말이다. 이게 바로 ‘문화에의 공헌’이요, ‘우정의 심화’요, ‘타인에의 도움’이되는 일이 아닐는지??

-고광애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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