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멀리건

내 인생의 멀리건


[내 인생의 멀리건]

골프에 멀리건(mulliga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경기 도중 중요한 샷이 잘못 되었을 경우 딱 1회에 한해서만 다시 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골프 실력이 들쑥날쑥한 골퍼에게는 실수를 되돌릴 한 번의 그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희망과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추어 골프에서 통용되는 규칙이지만,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해볼 용기를 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별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유명 IT 기업의 CEO가 15년 전 쯤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할 무렵의 얘기입니다. 당시 그 사업가는 부산·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건축, 토목, 조경 사업을 해서 엄청난 재력을 모은 어느 기업 회장님과 자주 만나고 골프도 함께 치면서 우정을 나누곤 했는데, 이 회장님은 재력보다 훨씬 넉넉한 인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IT 기업 CEO는 사업을 추진하던 중 긴급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어 평소 자신에게 넓은 품을 베풀어주던 회장님을 찾아 단기간 사업 자금을 융통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평소 회장님의 성품과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던 관계를 생각하면 급한 자금을 쉽게 융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다행히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회장실에서 차 한 잔 나눌 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행 중인 사업 얘기와 급한 자금 얘기를 들은 그 회장님은 천천히 차를 들기를 권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돈은 융통해 줄 수 없으니 마시던 차나 마저 마시고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거절을 하시더랍니다.

당시 급히 융통할 자금은 3억원 가량이었습니다. 물론 일반인에게는 큰 돈이겠지만 영남 최대의 재력을 가진 그 회장님에게는 푼돈이었을 것이고, 또 평소 친분으로 보아 그런 반응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 IT 기업 CEO는 정말 섭섭한 마음에 화가 치밀고 눈물도 쏟아질 것 같아서 급히 회장실을 박차고 나왔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금을 마련할 고민에 빠진 CEO에게 회장님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때때로 급한 사업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 때마다 내가 도와 줄 수는 없을 것이네. 자네의 사업은 자네의 힘으로 성공해야 하는 일이니 오늘의 거절을 깊이 생각해 보시게.”

의례적인 내용의 얘기라고 생각해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던 그 때 두 번째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3억원은 큰 돈일세, 그 큰 돈을 어찌 한 사람에게만 의지해서 융통하려고 하는가? 평소 자네의 사회 생활과 인맥 관리를 생각해보면, 여러 사람에게 솔직히 의논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되네.”

잠시 멍하니 있던 이 CEO는 머리를 돌로 내려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고,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CEO는 그 즉시 평소 교류하던 지인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작은 돈이나마 융통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CEO는 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100만원을 부탁한 한 선배는 1천만원을 보냈고, 500만원을 부탁한 오랜 친구는 3천만원을 보내는 등 지인들의 마음과 마음이 더해져 3일만에 당초 3억원을 융통하고자 하려던 계획을 훌쩍 넘겨 5억원에 가까운 돈을 융통함으로써 기한 내에 문제를 깔끔히 해결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평소 안면이 있던 회장님의 비서실장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사업 자금 융통 문제의 해결 여부를 묻기에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고 답을 하니, 그 비서는 큰 상자 하나를 내밀었고, 상자의 위에는 편지가 한 통 놓여 있었습니다.

“자네의 그 일이 해결되었다면 이 편지를 보게 될 걸세. 쉽게 해결해 줄 수도 있었지만 내 편한 도움이 미래의 자네 사업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네. 처음 자네가 융통하기를 원한 3억원을 보내니 다른 곳에서 융통한 자금이 있다면 최고의 감사를 보태어 약속한 날짜에 갚으시게, 이 돈은 자네의 성공을 응원하는 용돈일세. 한 마디만 덧붙이겠네. 사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를 때가 있을 걸세. 나도 사업하면서 수없이 겪은 일이기도 하지. 그래서 자네가 정말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딱 한 번, 내가 자네의 멀리건(mulligan)이 되어 볼 생각이네. 그러니 용기를 내고 사업에 더욱 열중하게나.”

그 후 ‘내 사업에 멀리건(mulligan)이 있다.’는 사실은 그 IT 기업 CEO에게 놀라울 만큼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확신, 크게 넘어져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손을 잡고 일으켜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은 그 CEO가 어떤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고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CEO는 그 믿음에서 힘을 얻어 국내 유수의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회장님이 약속한 멀리건(mulligan)을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산의 박 모 회장님으로 알려진 그 회장님과 IT 기업 CEO는 지금도 가끔 포장마차에서도 만나고, 선술집에서도 만나 삶과 사업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부산 최고의 기업가와 서울 최고의 IT 기업 CEO의 만남이지만 겉모습은 주변 손님들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오가는 신뢰와 그 신뢰에 보답한 열정은 겉모습만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크고 뜨거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의 용기가 되는 따뜻한 신뢰, 누군가를 일어서게 하는 단 한 번의 지지는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한 순간의 실수를 되돌려 다시 한 번 시작할 의욕을 갖게 해주는 멀리건(mulligan)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의 격려와 믿음인가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전부일 수도 있는 멀리건(mulligan)이 되어주고 있나요?

-최재성 ‘2019 Root Contents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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