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행복한가?
인도를 여행하던 어느 날, 나는 하루에 한 문장씩 힌두어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그날 처음으로 만난 한 방랑승 사두에게 문장 하나만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수첩을 꺼내 들고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그 사두가 말했다.
“당신이 맨 먼저 배워야 할 문장은 바로 이것이오.”
그는 발음도 분명하게 다음의 문장을 가르쳐 주었다
‘아즈 함 바후트 쿠스헤!’
그것은 ‘오늘 난 무척 행복하다’라는 뜻이었다.
그 문장은 산스크리트어 주문처럼 어떤 힘을 갖고 있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꾸만 반복해서 말하니까,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인도에 갈 때면 만나는 나의 스승 스리 수크데브 바바는 ‘어떻게 하면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는 일이다.”
베단타의 현자들은 삶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을 뛰어넘어, 진정한 행복인 ‘아난드(지복)’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이 과거에 행한 일들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므로, 그것들에 집착해 슬퍼하거나 기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아카샤 우파니샤드).
희랍의 철학자 에픽테투스도 말하고 있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우리는 잃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라고 말하라. 그러면 마음의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충고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세상이 허락했기 때문에 넌 현재 이러저러한 것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네 곁에 있는 동안에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라. 여행자가 잠시 머무는 여인숙의 방을 소중히 여기듯이.”
돌이켜 보면, 나의 인도 여행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한 과정에 다름아니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인도를 떠난 나는 차츰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라. 그것이 신이 네게 준 사명이다!’
이것은 어느덧 내 가슴에 새겨진 첫번째 계명이 되었다.
행복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동인도 벵갈 지방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별 하는 일 없이 그저 유쾌하게만 사는 한 바라문 남자는 내게 말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오, 가진 게 많지 않을 뿐. 반면에 당신들은 가진 게 많을 뿐이지 행복한 사람들은 아니잖소?”
인도에서 내가 배운 ‘행복론’은 다름아닌 이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주 일깨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단 하나의 길은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이미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것. 삶을 사랑하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행복은 때때로 놀라움과 함께 찾아오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곧 행복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곧잘 “아 유 해피?”하고 인사를 한다. 이 행성에 여행을 온 우리들 역시 하루에 한 번씩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난 행복한가?’하고.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은 내 인도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마치 인도 대륙 전체가 내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유 해피?”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 좋은글 더보기 : iusan.com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