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늙으면

나 늙으면


나 늙으면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이젠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쇠고기를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죽을 만드는 거지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하게 음악을 틀어 놓아야지
아주 연한 홍차를 끓여내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이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라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매일 눈을 떴을 때
당신을 볼 수 있길 바래

– 황정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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