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일 / 오은
나무가 책상이 되는 일
잘리고 구멍이 뚫리고 못이 박히고
낯선 부위와 마주하는 일
모서리를 갖는 일
나무가 침대가 되는 일
나를 지우면서 너를 드러내는 일
나를 비우면서 너를 채우는 일
부피를 갖는 일
나무가 합판이 되는 일
나무가 종이가 되는 일
점점 얇아지는 일
나무가 연필이 되는 일
더 날카로워지는 일
종이가 된 나무가
연필이 된 나무와 만나는 일
밤새 사각거리는 일
종이가 된 나무와
연필이 된 나무가
책상이 된 나무와 만나는 일
한 몸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음 날이 되는 일
나무가 문이 되는 일
그림자가 드나들 수 있게
기꺼이 열리는 일
내일을 보고 싶지 않아
굳게 닫히는 일
빗소리를 그리워하는 일
나무가 계단이 되는 일
흙에 덮이는 일
비에 젖는 일
사이를 만들며
발판이 되는 일
나무가 우산이 되는 일
펼 때부터 접힐 때까지
흔들리는 일
♨ 좋은 글 더보기 : iusan.com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