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여행을 가면 대신 식물에 물을 주고
그 한 사람이 여행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빈집 식탁에 채 식지 않은 음식 한 접시가 조심스레 올려져 있어도 좋을 그런 거리에 누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

두 집 사이의 가운데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그 나무에 잎이 나고 그 나무가 푸르게 되고
붉게 물드는 이후까지를 함께 따로 바라봤으면 한다

아니다 차라리 두 집 사이에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뒷모습을 공유하는 사람이였음 좋겠다
그 뒷모습 안쪽에 사람의 사람다운 냄새를 숨긴 사람이면 좋겠다

멍하니 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내 옆에 와서는 “이 꽃 이름은 뭐지?”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건 안 돼’라든가 남의 것을 건드리면 어떻해’ 같은 투로
도덕책 읽듯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다 아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무심히 자유로운 마음을 앞세울 수도 있는 사람
그럴듯하거나 그럴 만한 별 기분도 아닌 상황에서 팝콘 터지듯이 웃어젖히는 사람

아무 눈치보지 않고 아무데나 털퍼덕 잘 앉는 사람이면 좋겠다
털퍼덕 앉으면서 서서히 뭔가 마음의 작동을 시작하는 사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흥얼대는 노래 한 소절을 누군가 아무리 말려도 계속 흥얼대기만 하는
나사 하나 빠진 자신을 숨기지 않는 사람

나에게 오지 않아도 좋고
나를 좋은 친구라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 믿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였으면 한다

잘하는 게 많지 않은 사람
사람 따위는 믿지도 않는 사람
별들의 이름을 잘 못 외우고 경쟁과 계약을 싫어하고
비가 온다는 예보와 혼자 춤추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병률-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