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밤새 함박 내리면 좋겠다
그날은 밤새 함박 내리면 좋겠다
동서남북 철조망이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
김 오르는 크고 작은 지붕들이 똑같은 모자를 쓰고
공작새 굴뚝새 똑같은 옷을 입고 눈꽃나무마다 한 마리씩 내려앉으면 좋겠다
울퉁불퉁 저울질하던 일상을 내려놓고
뾰족하게 돋아난 슬픔들을 어루만지면 좋겠다
가라앉은 것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고
날아오른 것은 언덕에서 다시 내려와
어깨동무로 얼싸안고 뒹굴면 좋겠다
바람에 쓸리면서 신음하던 낙엽을
솜이불 아래 따뜻한 잠을 재우는 사이
아침의 뉴스는 눈부신 은빛으로 쏟아지면 좋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즐거운 시가 되고
모든 이웃이 노래하는 시인이 되어
햇살 한 입 베어 문 새처럼 날아오르면 좋겠다
매일 다니는 오솔길따라 발자국 헤아리며 걷다가
광장 모퉁이에서 그대를 눈사람으로 만나
흰 치아 부딪치며 긴 입맞춤 했으면 좋겠다
그날, 첫눈이 내리면
-이인수, ‘첫눈을 기다리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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