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없는 여인
당나라 2대 태종인 고조의 둘째 아들 이세민은 형과 아우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하지만 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이세민을 죽이라고 하던 위징을 되려 자기의 신하로 기용을 하였다.
이유는 바른말 하는 강직함을 높이 산거였다. 하지만 위징과 태종은 논쟁이 잦았고 그럴때 마다 태종은 “저 촌뜨기를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테다” 라는 말을 늘 하면서도 죽이지 않았다
어느날 위징이 죽자 태종이 몹시 슬퍼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겐 세개의 거울이 있었다. 하나는 청동 거울로 의관을 바로 잡는데 썼고 또 하나는 흘러간 역사를 보며 현세의 흥망을 바로 잡아 가는데 썼다. 그리고 세번째 거울은 위징이었다.
위징을 통해서 나의 심보와 행실을 바로잡아 살아왔는데 지금 나의 거울 하나가 깨어졌다
앞으로 무엇으로 나는 나를 바로 잡을꼬” 하며 깊이 슬퍼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태종 때에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사람이 귀하다. 직언하는 바른 사람이 귀한 시대다. 정치가나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이나… 나는 집에서 서당에서, 교육원에서, 듣고싶은 말만 골라 듣고 있지는 않은가 되 짚어본다.
王者之政은 莫先於安民이니 安民然後에 國可得而安矣니라.
“왕의 정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백성을 편안히 한 연후에 나라가 편안할 수 있다ㅡ효종실록
-남전 이종분(열호당 서당 훈장)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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