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죽난서ㅣ罄竹難書

경죽난서ㅣ罄竹難書


[경죽난서ㅣ罄竹難書]

○ 가시나무를 헤치고 쪼개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다.
○ 罄(빌 경) 竹(대 죽) 難(어려울 난) 書(글 서)

서기 105년 중국 後漢(후한) 때의 蔡倫(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기 전에는 대나무를 쪼갠 竹簡(죽간)에다 글을 썼다. 나라 안의 대나무가 다하도록(罄竹) 글을 써도 다 쓰기가 어렵다(難書)는 이 말은 저지른 죄가 하도 많아서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좋은 일을 이렇게 적을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오랜 관례상 죄를 열거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앞서 나왔던 머리카락을 다 뽑아 헤아려야 할 만큼 죄가 많은 것을 비유하는 擢髮難數(탁발난수)와 유사한 쓰임새다.

중국 隋(수)나의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는 100만 대군으로 高句麗(고구려)를 침공했다가 乙支文德(을지문덕) 장군에 의해 크게 패한 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양제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등 업적도 있지만 사치스런 생활에 정벌을 일삼아 백성들에 과중한 부담을 줬다. 왕의 폭정에 대항해서 각지에서 농민군이 들고 일어났다.

반란 세력 중에서도 가장 큰 瓦崗軍(와강군)의 우두머리 李密(이밀)은 수도를 공격하면서 양제의 죄악을 성토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남산의 대나무를 모두 사용해도 그의 죄를 다 적을 수가 없고 동해의 물을 다 쓴다 해도 그의 죄악을 씻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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